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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石右의 시방1595

계절은 바뀌어도 - 윤명상 계절은 바뀌어도 / 석우 윤명상 계절은 이름을 바꾸고 제 갈 길로 간다. 울지 못한 감정으로 떠나는 봄과 한바탕 울어 줬으면 하는 여름의 갈림길에서 아픔을 공유한다. 속으로 영그는 6월이기에 계절의 차이를 겉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혈기 방장한 시기, 조바심과 걱정스러움으로 고삐를 쥔다. 2022. 6. 2.
밭 - 윤명상 밭 / 석우 윤명상 밭갈이를 한 뒤 옥수수 모종을 심었다. 밭은 흙의 바다. 이제부터 땅 짚고 헤엄을 쳐야 하는 저 가녀린 모종들. 더러는 바다에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용케 흙의 바다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겠지. 헤엄칠 줄을 몰라 땅 짚은 그곳에서 생을 다하지만 거짓 없는 가장 정직한 꿈을 꿀 것이다. 2022. 5. 28.
어느 봄날의 추억 - 윤명상 어느 봄날의 추억 / 석우 윤명상 오후의 봄볕이 진주처럼 빛나던 꿈속같이 먼 어느 날, 자동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아지랑이 피던 길을 따라 바람처럼 다가오는 소녀를 보았습니다. 이 시간에 이런 곳에서 낯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드라마입니다. 점점 좁혀지는 그대와의 거리, 봄 햇살에 드러난 그녀를 확인하는 순간 몸은 굳고 가슴이 뛰었던 것은 사춘기의 감정으로 나만의 비밀스럽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봄 같은 소년의 마음에 한 송이 장미처럼 피었던 사랑, 잠깐의 만남은 오랜 세월 손이 닿지 않는 구름이 되었지만 그렇게 소녀는 지지 않는 내 가슴의 꽃이 되었습니다. 2022. 5. 24.
늙은 대화 - 윤명상 늙은 대화 / 석우 윤명상 육십 레인을 달려가는 친구들이 카톡방에서 대화를 푸념한다. 이제 날 잡아 만나자. 안돼, 아직은. 코로나 걸려 죽은께 더 있다 보자. 이놈아, 그러다 죽어서 만나게 된다. 맞다. 죽어서 만나더라도 아직은 아니다. 카톡방은 연일, 살아서 만날지 죽어서 만날지 늙음과 코로나 사이에서 만남을 두고 '카톡' 거린다. *동구문학 23호(2022)에 수록 2022. 5. 20.
5월의 기도 - 윤명상 5월의 기도 / 석우 윤명상 푸름은 정직이며 깨끗한 양심과 거짓 없는 삶으로 보여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푸른 마음으로 온 산천이 하나가 되어 기도하는 5월입니다. 누가 저 때 묻지 않은 푸른 마음을 닮을 것이며 모략이 없는 순수한 기상을 흉내 낼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이 저토록 푸르러진다면 세상은 더없이 평화로울 것입니다. 2022. 5. 18.
태양이 그리운 날 - 윤명상 태양이 그리운 날 / 석우 윤명상 비가 내리는 날에는 태양이 그리웠습니다. 언제나 머리맡에 있었기에 사라지고 없는 지금 비로소 그리운 태양입니다. 그대의 미소를 당연하게 여기던 때에는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 미소가 그리운 날에는 비가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커튼을 젖히고 내다보는 하늘에 태양 대신 그리움 하나 동글동글 떠다니는 것은 그대가 감춰진 까닭입니다. 2022. 5. 13.
봄날을 넘어(새로운 도약) - 윤명상 봄날을 넘어 - 새로운 도약 / 석우 윤명상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이제 다시 꽃망울을 여는 대한이여. 앞에 놓인 엉킨 실타래를 풀고 질펀한 진흙탕을 다지며 다시 나아가자. 발목 잡혀 버둥대던 나라, 코끼리코돌기로 어지럽던 국민, 내유외강으로 속 터지던 5년, 그러나 이제, 새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봄날이다. 봄날은 모두의 것이지만 음지에서 혀만 날름거리는 독사처럼 여전히 봄날을 외면하며 물고 늘어지는 망상가도 있는 법. 주저앉지 말자. 사사로이 경거망동할 일도 아니지만 망설이며 눈치 볼 일도 아니다. 봄꽃이 지고 나면 이파리는 푸르러지듯 자유와 공정과 화합을 향해 나아가자. 하나하나의 수목에 관심을 쏟되 한걸음 물러서서는 숲 전체를 보며 치우치거나 편애하지 말고 이름 없는 작은 잡초까지 품고 가자. 초.. 2022. 5. 10.
늦봄에 오는 그리움 - 윤명상 늦봄에 오는 그리움 / 석우 윤명상 봄의 유혹에 정신없이 눈을 즐기며 마음을 빼앗기다 문득 살며시 떠나고 있는 봄 사이로 수줍은 그대를 보았습니다. 쇠스랑으로 밭을 고르며 봄볕에 흘리던 땀처럼 그대는 내 가슴에 흥건히 젖어 있건만 나는 이랑을 돋우며 무심코 그대를 훔쳐낼 뿐이었습니다. 어디에나 봄은 있듯이 그대는 어느 때나 있었습니다. 멀리 봄은 떠나더라도 그 자리에는 그대의 고운 미소가 봄꽃처럼 피어있을 것입니다. 2022. 5. 9.
대청호의 5월 - 윤명상 대청호의 5월 / 석우 윤명상 허허하던 호수가 눈부신 청포 치마 걸쳐 입고 고고히 찾아온 5월. 그리움으로 지친 마음과 메마른 계절에 상처 입은 영혼을 속 깊은 가슴으로 감싸주며 언젠가 그리운 님의 품에 안겨 눈물 뿌리며 울던 그 평온함을 안겨줍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머니의 품과 5월의 자태를 저 호수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세월이 더 흐른 뒤에라도 5월이 되면 다시 찾아와 안길 어머니의 품이라는 것을. 2022. 5. 7.
신록의 계절에 - 윤명상 신록의 계절에 / 석우 윤명상 저것은 순수이며 거짓 없는 양심의 색이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념이다. 온 산천이 정직으로 물드는 계절인데 신록을 잃고 변색하는 것은 인간뿐. 그러나 가슴이 푸른 사람은 그도 자연이다. 2022. 5. 4.
한 송이 장미 - 윤명상 한 송이 장미 / 석우 윤명상 어머니는 한 송이 장미였습니다. 아름다움과 향기는 같지만 장미는 가시를 드러내고 밀쳐오는 누구라도 찔렀다면 어머니의 가시는 안쪽으로 향하여 자신을 찌르며 한 방울의 향기로 흘렀습니다. 찔리고 또 찔려도 시들지 않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장미. 그 고통이 있었기에 장미는 지고 없어도 향기는 두고두고 남아있는 것입니다. 2022. 5. 3.
나는 쓰레기를 모은다 - 윤명상 나는 쓰레기를 모은다 / 석우 윤명상 쓰레기가 쌓여간다. 매일 배출되는 노동의 대가는 보잘것없는 박수를 받으며 버려지고 처박혔다. 오십 년쯤 묵은 것부터 방금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것까지 내 가슴을 뚫고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형체들이 쌓여간다.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제품은 잠깐의 위안으로 만족하며 긴 고통의 늪으로 사라져간다. 정성으로 태어나지만 거울 속 얼굴처럼 요리조리 마주보다 기껏 버려지고 마는 쓰레기. 2022. 4. 29.
중년을 졸업하다 - 윤명상 중년을 졸업하다 / 석우 윤명상 내 의사와 무관하게 어느 날 나는 고령자요 노인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 청춘은 펄펄 뛰고 있는데 졸업장도 없는 월반을 한 것이다. 누가 알랴. 졸업이 주는 허탈한 시선을, 그렇다고 마다할 수 없는 것. 마음은 결코 아니라지만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몸이 끌려가듯 자꾸만 갇힌다. 나이도 단지 계절병이면 좋겠지만 계절도 영원한 것은 아니기에 이젠 노인의 졸업장을 기다려야겠다. 2022. 4. 28.
악마를 보았다 - 윤명상 악마를 보았다 / 석우 윤명상 악마는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뿔 달린 것도 아닌 멀쩡하게 집 주변과 눈과 귀밑에, 빈대처럼 달라붙었습니다. 교묘하고 능숙한 혀로 상처를 주며 선동하는 악마와 나는 설전을 벌였습니다. 그도 한 때는 악마와 싸웠겠지만 지금은 악마를 보지 못하는 악마가 되었습니다. 자신 속의 악마에 이끌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로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을 쥐어짜는 악마에게 피와 눈물은 없었습니다. 2022. 4. 24.
죽은 고목을 위한 연가 - 윤명상 죽은 고목을 위한 연가 / 석우 윤명상 푸른 호흡을 멈추고 알 수 없는 세월을 간직한 채 바람의 쉼터가 되어버린 한 고목을 나는 보았습니다. 모진 세월을 버텨내며 보고 들은 사연들은 일절 함구하고 살아온 까닭에 끝까지 꿋꿋할 수 있는 저 죽음. 어데, 유혹인들 없었을까. 얼음장 같은 고독과 목마른 절규, 가지가 꺾이며 휘는 아픔까지, 그것은 생명을 지탱하는 결이 되었습니다. 아픔조차 계절에 묻어버리고 견뎌온 세월이지만 이젠 그 어떤 고난도 마주할 수 없는 흙으로의 여정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뼈대만 남기까지의 침묵으로 당당히 지키고 있는 제 자리에서 변치 말고 변함없이 살아라, 살아라 내게 눈짓을 주고 있습니다. 2022. 4. 21.
때리면 아팠다 - 윤명상 때리면 아팠다 / 석우 윤명상 세월의 이끼가 쌓이고 마음이 무뎌질 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때리면 아팠다.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지만 가늘고 짧은 봄비에도 맞는 아픔을 감당해야만 했다. 아침 안개조차 달려들어 때릴 때의 그 아픔을 그대는 아는지. 살갗을 뚫고 깊숙이 들어오는 아픔에 나는 원망도 했다. 그러다 아픔이 가시면 맞은 자리를 어루만지며 나는 또다시 아픔을 기다렸다. 2022. 4. 17.
시의 권력 - 윤명상 시의 권력 / 석우 윤명상 뒤집거나 비틀거나 짓이겨놓은 착란 증세를 겪으며 기형에 된 도형을 미인대회 심사를 하듯 바라보는 시선들끼리 진선미를 정하고 으뜸이라 한다. 게의 세상에서 가재는 이방인이 되고 멀쩡한 데서 이탈하지 않으면 멀쩡한 것이 될 수 없는 이제는 추할수록 미인인 세상. 게와 조개와 짱뚱어가 조화를 이루는 갯벌은 이미 버려지고 입이 찢어진 가재만 숭배하는 지배계층은 그들만의 권력으로 펜을 좌우한다. 기형이 된 도형이 아니면 죄다 도랑의 피라미로 취급해버리고 도랑에 있던 기형은 끌어내어 바다의 잉어라 고집하는 시의 권력이여. 2022. 4. 13.
4월의 봄비 - 윤명상 4월의 봄비 / 석우 윤명상 새봄이 배냇저고리를 벗은 지도, 모유를 떼고 이유식을 한 지도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성큼 커버린 계절, 연둣빛 새순은 사춘기의 거뭇한 구레나룻처럼 어디에서나 보송보송한 시절이 되었다. 한바탕 샤워하듯 후련한 빗줄기로 쏟아내는 봄의 성장통을 느낀다면 곁눈질 한 번으로 그냥 지나칠 봄은 아닐 듯싶다. 2022. 4. 13.
길 - 윤명상 길 / 석우 윤명상 저 길로 가면 안 된다고 앞선 사람을 향해 삿대질하며 눈을 흘기던 그가 모퉁이를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당신이 손가락질하던 그 길을 어째서 걸어왔느냐고. 그는 버럭 소리치며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우기지만 본인이 모르는 일이었다. 2022. 4. 9.
달리기 - 윤명상 달리기 / 석우 윤명상 아이 둘이 달리기를 한다. 1등에게는 사과를, 4년의 특권이다. 꼴찌에게는 땅콩을 준다. 신이 나서 우쭐대는 아이는 풀이 죽은 아이의 땅콩까지 탐내며 으름장을 놓는다. 다시 달리기를 한다. 자신만만했지만 사과는 짐이다. 땅콩을 쥔 아이에게 지고 속이 상해버린 아이는 만만한 사과를 들이밀며 까불지 말라 허세를 부린다. 또다시 시합은 이어진다. 앞서 간발의 차로 졌기에 물불 가리지 않는 꼼수에 패가 갈린 관중들은 차라리 눈을 감거나 그건 아니라며 아우성을 친다. 2022. 4. 9.
초승달 닮은 - 윤명상 초승달 닮은 / 석우 윤명상 내가 저기, 낮은 곳에서 작은 몸으로 잠깐 왔다가는 초승달을 좋아하는 것은 여기, 낮은 곳에서 이름 없이 잠깐 살다가는 우리도 초승달인 까닭이다. 2022. 4. 7.